사랑은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닌, 사랑은 되어지는 것.
10 월 13 일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날까지도, 아니 통증이 시작된 당일까지도 제 머릿속에 맴돌았던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가 뱃속에 있는 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전심으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 섞인 기대감 속에서 아이는 세상에 나왔고, 저는 처음 마주보는 준성이를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어색하면서도 두근거리는 감정으로 병원에서 제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었던 첫 이틀이 정신없이 지나고 퇴원을 해서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서 바라본 창밖에는 처음 맞이하는 미시건의 가을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고, 그걸 본 저는 ‘이 아이가 조금만 더 뒤에 태어났더라면, 지금쯤 데이트를 하고 행복한 신혼을 즐기고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났습니다. 이젠 20 대의 삶이 데이트를 즐기던 풋풋한 생활이 끝난 것만 같았고, 때로는 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이런 감정으로 아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갔습니다. 그렇게 흔들리던 때 임신 초기에 만사를 하며 묵상 했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7-40)
‘나의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 하여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큰 사랑일까? 그런 엄청난 사랑을 감히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을까? 그런 큰 사랑을 흉내나 낼 수 있을까?’ 임신 초기였던 저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이런 사랑이 어느 정도의 사랑인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하겠다는 노력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제 마음을 가로막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것(롬 1:16)과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대해서 먼저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 사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기도했을 때 예수님께서 제 마음속에서 역사하시고 사랑을 부어 주셨던 순간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제 상황이나 몸 상태가 달라진 건 없었지만,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가운데에 부어 주셔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그리고 하나님을 늘 사랑하게 해주시길 기도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성이를 통해 저에게 주신 너무나 특별한 사랑이고 은혜였습니다. 노력하는 사랑이 아닌 되어지는 사랑을 경험한 순간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준성이가 저의 밤잠을 깨우고, 육아가 지치고 힘든 건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아이에게 제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그리고 믿어진 믿음을 흘려 보낼 수 있도록 전심으로 기도하고 사랑하는 엄마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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