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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나눠요 | 이영은 목자

  • 3월 29일
  • 3분 분량

요한복음 16:1-15


곧 십자가를 지게 되실 예수님께서 앞으로의 두가지 일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는 박해 받을 것과, 또 하나는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실 성령님은 죄, 의,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고 제자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오늘 ‘나를 믿기에 박해받게 될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이 박해는 출교(사회에서 추방당하는 일종의 사회적 죽음이었습니다)당하고 죽음 당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걸어가고 계신 길을 설명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때가 이르면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I’m offering a service to God (NIV 버전)” 할 것이라고, 그 이유는 아버지와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성경 지식만, 율법만 가지고 율법주의에 갇힌 사람들에 의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5:21)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그런 박해를 당할 때 이 말씀을 기억나게 하려 하심입니다. 고난 가운데 예수님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박해하였기에 너희도 박해할 것이라고,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예수님을 미워한 줄을 기억하라고(요 15:18-21)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떠나셔야만 성령님이 오시기에 이것이 제자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시는데, 제자들은 마음에 근심이 가득합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목적이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님을 증언하실 것을 두고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책망은 세상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여 회복과 치유, 즉 회개와 진리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 8:24)”라고 말씀하셨듯이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또 지금은 육신을 입어 이 땅에 함께 계시지만 곧 아버지 계신 곳으로 돌아가실 예수님의 완전한 그 의를, 하나님께 함께 계심으로 보증하시는 진정한 의를 깨닫게 하셔서, 우리가 절대 예수님처럼 의로울 수 없음을 비롯해 예수님의 의를 구하며 따라 살 것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임금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임금 노릇 하며 떵떵거리며 사려는 세력이 누구인가요? 세상은 예수님이 임금이길 그토록 바랐는데 예수님은 임금은 커녕 전혀 다른 길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앉고싶어 안달난 그 세력은 누구인고 하니, 사탄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탄은 심판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가진 자, 곧 사탄을 이기십니다(히 2, 쉬운 성경). 이미 끝난 세상의 권세를 좇고 있지는 않은지, 진정한 승리를 분별해 가고 있는지 다시한번 돌아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많이 들어서 익숙했지만 성령님은 입술에서 많이 겉돌던 때가 있었습니다. 뭔가 추상적이고, 데면데면했다고 하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3년 전쯤 말씀 카드를 받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로마서 8장 26절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모르는 단어는 없었는데,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왜 ‘오직’ 이지?”, “탄식이면.. 뭔가 안타까워하신다는건가?”, “친히 간구? 누구한테 부탁하시는건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갖고 있는 말씀 카드가 그것 한 장이었어서, 일단 방 벽에 붙여놓고 계속 반복해서 한 글자 한 글자 읽었습니다. 혹 매직 아이를 아시나요? 노이즈같은 패턴의 그림을 계속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에 눈이 보는 방법을 터득하면, 갑자기 뿅 하고 다른 그림이 튀어나옵니다. 방 벽에 붙여놓은 말씀이 그렇게 어느날 갑자기 뿅 하고 튀어나왔습니다. 흩어져 돌아다니던 단어들이 모여들어서 하나의 형상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성령님에 대한 말씀을 성령님을 통해 깨닫게 되면서 제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고 있었던, 항상 그 곳에 계셨던 성령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말씀이 얼마나 달았던지, 그 순간부터 성령님은 저의 동반자가 되셨습니다. 저의 삶에 가장 밀접하게 관련하는 분이 되셨습니다. 검색을 해볼수도 있었고, 신앙의 선배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성령님이 이렇게 인도하셨습니다. 느리지만 끈질기게 성령님과 함께 걸어가기 원합니다. 기다리고 참으시는 하나님께 염치 없지만 더 기대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행하신 일들을 아는 것이 지금 삶을 사는 제게 무한한 힘이 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말씀으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아는 것이 제게 힘이 됩니다. 말씀의 렌즈를 끼고 바라보는 내 삶의 아주 작은 순간들에는 말씀이 살아있습니다. 고난 속에 예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은 제게 예수님의 초청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시험대에 올려두시고 잘하는지 지켜보는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그 길을 먼저 가시고, 가셨고,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종이 아닌 친구로 택하여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묵상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예수님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얼마나 고통받으셨을지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찢기시기까지 해결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 안의 비참한 이 죄를 돌아보게 하십니다. 육은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예수님을 더욱 알아갈수록 영의 싸움이 더욱 치열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빛이 더해갈수록 선명해지는 어둠의 경계와, 성령님의 일하심을 통해 드러나고 깨닫게 되는 나의 오래된 죄성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이길 힘이 없습니다. 율법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셔야만 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돌아가는 매일이 되기 원합니다. 단 하루도 십자가로 돌이키지 않고서는 이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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