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나눠요 | 이영은 목자
- 4월 26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0일
(창세기 28장 10-22 절)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은 야곱이 형 에서의 미움을 받게 되어 리브가의 오빠이자 야곱은 곳에이라반이 있는 하란, 방탄아랍지역으로 떠나게 됩니다. 하란으로 가는 중에 루스라는 곳에 이르러서 잠에 든 야곱은 꿈에서 환상을 보고, 그 곳을 벧엘이라고 이름합니다.
야곱이 이르렀던 한 곳'은 야곱이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빈엘'이 됩니다. 야곱은 성날 형을 피해 도망가는 중이었습니다. 집을 떠난 야곱이 이르렀던 곳은 약 85km 떨어진 곳으로 대략 3일 정도를 걸려 도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불확실한 여정을 떠나 고된 몸을 뉘인 불특정 '한 곳 (11 절)에서, 야은 별 생각 없이 피곤에 몸과 마음을 맡겼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야곱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어서 야곱에 게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함께 계시고, 지키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야곱은 가리워져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항상 함께 계셨던 하나님을 그 곳에서 마침내 경험하고, a certain place 였던 그 곳은 Bethel, 하나님의 집이 되었습니다. 평범할지 모르는, 여느 곳과 다를 것 없을 곳도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디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집이 됩니다. 그 곳은 곧 우리 삶이고, 우리 학교고, 직장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내가 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 하고 서원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을 맺습니다. 아직은 야곱의 믿음이 성장하고 형성되어 가는때인 것 같습니다. 잘 들여다보면 야곱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닌데, 신뢰하질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하나님을 정말 알지 못해서, 상황에 따라 어떤 때에 믿을 수 있는데 어떤 때엔 믿지 못해서, 오늘과 같은 때엔 화중이 필요한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한다고 해서 바로 깊은 믿음이 뿌리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하나님의 때만 있지, Shortcut 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불완전한 이 믿음 앞에, 하나님은 조건부 하나님이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보란듯이 무조건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약속을 주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야곱은 당시 그의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귀한 고백을 했는데,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라는 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깊이와 너비의 고백과 언행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때로는 조금 과할 때도 있고, 때로는 정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스스로의 바운더리를 넓혀보거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보지 않으면 스스로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도 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싶다면 삶의 다양한 곳으로 나가보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반대로 침대에 누워만 있어서는 그 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만을 보게 되겠지요. 하나님이 장소나 상황에 이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든 일하시지만, 내가 어디에 서있느냐에 따라 어떤 하나님을 경험하는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계속 다른 때에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경험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 경험은 약이 잠들었던 그 자리처럼 우연히 (그리고 필연히) 시작되기도 하지만, 그 다음은 우리의 의식적인 반응과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믿음의 성장을 따라 자연스럽게 순종의 선택으로 반응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 소망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께서 못박혀 죽으셨지만 우리가 죽은것으로 여겨주신 것처럼, 우리의 작은 순종의 선택을, 우리의 일조를, 우리 삶 전체를 받은 것으로 여겨주십니다. 이렇게 거저 받은 은혜에 기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눕에는 우리 10분의 9밖에 가지지 못하는 자들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일부를 내어드리는 믿음으로 전부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그리고 친히 우리의 전부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한 자들로 이 세상에서 내딛는 모든 발걸음이 헛되지 않을 것은 하나님이 그 모든 길을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곳이 벧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하심이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피차 사랑의 빛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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