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왜 나에게 이러십니까?"

하나님을 믿고 누구보다도 믿음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 가장 혼동이 되는 일은 마무런 설명도 없이 암담한 상항이 벌어질 때 입니다. 삶의 앞과 뒤가 연결이 않되는 그러한 참담한 상황이 벌어질 때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해도 이러한 상황 앞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경우를 우리는 삶에서 경험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또는 이러한 일은 나에겐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던 나의 삶에 내 자신이 그 자리에 주인공이 되어 있을때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 왜 하필이면.. 나야?” 라는 울음이 날때가 있지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더욱 우리의 믿음의 삶에 한층 더 답답하게 하는 일에 대하여 성경에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때... 우리는 당혹합니다. 하나님이 무서워지고 또한 하나님에 대하여 거리가 생길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좀 설명서라도 붙어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혼동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래의 이야기와 같은 믿음이 좋고 그래도 믿음의 삶의 시작하려고 아브라함과 사라가 자기의 본토/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 그래도 이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이 시점에 이 어찌 끔찍한 일이란 말인가요? 아직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삭을 바치라는 것은 어떻게 받아드려야 합니까? 목사님 좀 도와주세요... 성경의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좀 부탁드려요 하는 성도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렇다면, 누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을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나는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부모 형제 떠나 고기잡이 모든 직장 다 버리고 쫓았는데, 지금 와서 갑자기 그만 따라오라구요? 그럼 진작에 말씀하셔야 되잖아요. 왜 지금 와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이러시는 거예요? 예수님 나도 같이 가고 싶어요. 나를 떠나지 말아주세요.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너가 부모를 떠나 나를 따라온 것은 이제 이길로 가야하기 때문이야.. 이제 지금까지 따라온 그 3년의 세월을 떠나야 해 그리고 새로운 여정으로 너를 초대하고 있는거야 ..


아브라함아... 모리아산으로 가라.. 이삭을 죽이라.. 아브라함아! 이삭을 죽이라는 것은 이삭을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지금보는 그 이삭에서 떠나라는 것이다. 네 아들 독자 이삭은 네가 현재 보고있는 100 세에 낳은 아들로 보는 눈에서 떠나라는것이다. 이제 네 아들 이삭을 통해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 너로 말미암아” 네가 복을주기위함이다.. 알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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