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나눠요 | 양가영 목자
-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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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일기
요한복음 11:38-46
오늘 본문에서 마리아와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에 찾아옵니다. 어제 본문에서는 마리아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조금 더 일찍 오셨더라면…” 하며 예수님 앞에서 울었고, 많은 사람들도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함께 통곡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마음 아파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눈물은 단지 동정과 연민의 눈물이었을까요? 만약 그랬다면, 마리아가 나사로의 병 소식을 전했을 때 곧바로 달려오셔서 그를 살리심으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들으시고도 곧장 떠나지 않으셨고, 일부러 지체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기에 우시기까지 하시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눈물은 단순히 사랑했던 나사로의 죽음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참한 현실과, 그 가운데 드러나는 믿음 없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흘리신 거룩한 분노의 눈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무덤으로 가실 때에도 성경은 “마음에 비통히 여기셨다”라고 말씀합니다. 무덤으로 가시는 예수님께 마르다는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합니다.수천 명을 먹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수많은 기적을 보았음에도, 죽음의 문턱 앞에서는 여전히 절망뿐이었고 부활을 믿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이 기도가 둘러선 무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신 후 나사로를 부르셔서 다시 살리셨습니다.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기적은 단지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믿음 없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는 권세와 부활의 능력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게 예수님꼐서 수많은 이적들과 경험들로 여기까지 인도하셨는데 믿지 못하여 주님이 하실 일들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나의 믿음없음 때문에 주님이 슬퍼하시고 계시지는 않을지, 육신의 불가능 앞에 그저 체념하는 믿음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 저에게 여러가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감당할 수 없어 보이나 앞으로 내게 맡겨 주실 사명과 비전의 약속, 육신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현재 육신의 상황으로는 어려워 보이는 가족 구원까지, 저에게 모두 다 믿음을 요구하는 상황뿐입니다.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머리로만 알고 글로만 믿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체험되고 경험되는 살아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이 부족하여 눈에 보이는 상황에 체념함으로써 주님의 영광을 가로막지 않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기도와 의인의 간구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나의 불가능의 무덤에 찾아오셨을 때,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말하며 체념하지 않고, 일이 지체되고 늦어지더라도 끝까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요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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