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나눠요 | 한성봉 목자
(사사기 11장 29-40절)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했고, 암몬인들에게 가까워질 때 그가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암몬 자손을 넘겨주시면 승전 후 돌아올 때 가장 먼저 자신의 집에서 나와 영접하는 이를 번제물로 드린다고 합니다. 입다와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가장 먼저 영접한 것은 입다의 하나 뿐인 딸이었습니다. 입다는 통곡하였습니다. 그의 딸은 그 상황을 받아드리며 두 달간의 애곡하는 기간을 갖고 번제물로 바쳐지게 됩니다.
가히 충격적입니다. 사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이리도 잔인한 상황이 벌어지게 하시는지. 입다도 사랑하는 딸을 위해서 다시 한번 주님께 기도드렸으면 어땠을지. 이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해석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딸은 실제로 바쳐진 것이 아니라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매우 주관적인 입장으로는, 입다가 충분히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맹세한 서원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입다는 어떤 이유에선지 매우 고양되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장관으로 세워지고, 하나님의 영이 임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완벽히 자신의 생각대로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무리한 서원을 했을지도 모르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나, 우리의 뜻을 그대로 이루어 주시는 신이 아닙니다. 나의 기도가 성취되는 것 같다고 해서 내가 완벽해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죄인이기에 매일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편에 계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길을 열어주시는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학과에서 장학금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명에게 주는데, 제가 뽑히게 되었습니다. 간혹 저는 공부가 힘들기도 해서 그만 두고 딴 것들을 하면 어떨까 생각이 드는데, 길을 열어주실 때마다 아직은 걸어가라고 하시는 것 같기도 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셔서 제게 허락하시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저의 세속적 유익을 주시기 위함은 아닙니다. 분명 이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들의 발자취를 엮으셔서 선한 일을 이루시려 하십입니다. 그래서 저는 겸손해야 합니다. 나에게 허락하신 것들이 있다고 해서 내가 선해서 나를 편애하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막강한 부를 허락하시기도 하시니까요.
저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를 편애하시기 때문은 아닙니다. 내가 완벽히 선해서도 아닙니다. 그래서 은혜일 뿐입니다. 은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도, 저의 곁에 보내주신 사람들도, 건강도, 기회도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곤비하거나 부한 것이 하나님을 향하는 길에 아무 지장이 없어야 합니다. 영적인 것이나 물적인 것을 채워주신다고 해서 영적으로 가난한 마음이 채워지면 안되겠습니다. 죽을 때까지 나의 본 모습은 매일 같이 말씀의 양식이 필요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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