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나눠요 | 국상후 전도사
- 7시간 전
- 2분 분량
(이사야 26:1-27:1)
[요약]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해서 그 날, 높은 나라들의 심판을 받고 주의 백성들이 땅 끝에서부터 구원을 얻는 날에 일어날 일들을 선포합니다.
모든 성벽과 높은 요새를 헐어버리시는 그날, 심지가 견고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들에겐 주의 구원이 견고한 성읍이 되고 성벽과 외벽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주의 심판과 밤 중에도 주를 기다리고 기억하며 간절히 사모하는 자들이며, 다른 주들이 관할하여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환난과 징벌 가운데에도 오직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선 이 기도에 내 백성은 밀실에 들어가 잠깐 숨으며, 죄악을 벌하시고 용을 죽이시리라 하십니다.
[묵상]
[16절]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 배 위에서 폭풍이 몰아칠 때에 주무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두려워 예수님을 깨우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하십니다(막 4:40). 심판과 환난의 길에서 주님을 기다리고 앙모하는 것이 믿음이며, 불안하여 초조한 것을 믿음이 없다고 하십니다. 결국엔 주를 떠나기도 합니다.
[교훈]
예수님은 우리 삶의 폭풍을 없애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믿음은 폭풍도, 환난도, 시험도 이겨낼 힘을 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의인"은(7절) 이것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폭풍과 환난과 징벌을 피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없애 달라고 간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 안에서 하나님을 앙모하고 사모합니다. 배 위에 있는 제자들은 폭풍과 주무시는 예수님이라는 두 가지가 함께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해결을 해주시거나, 해결하지 않으시면 같이 죽거나, 둘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이 폭풍 속에서도 예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믿음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적용]
우리는 관계에 들어가기 전, 마음을 결정하기 전 모두 그것을 통해 얻고자하는 기대를 분명히하고 시작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대하고 있는 것이 있기에 시작했습니다. 처음 저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말씀과 예수님을 윤리와 도덕 선생으로 두고 믿음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선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따름으로 얻고자 기대하는 것들이 잘못되진 않았느냐?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자들이 그 비용을 먼저 계산하지 않겠느냐고 하신 말씀은(눅 14.28), 예수님을 따르며 그 비용을 잘못 계산한 이들이 이 길이 십자가의 길임을 깨달았을 때에 모두 돌아갈 것을 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제게 다시 물어보십니다. 너는 무엇을 얻고자 하느나? 왜 목회를 하겠다고, 나를 따르겠다고 하였느냐? 그 비용을 제대로 알고 오고 있는지, 아니면 혹시 너의 기대는 잘못된 곳으로, 다른 곳으로 설정되진 않았느냐? 더 나아가기 전, 지금 분명히 할 것을 제자들에게도 요구하셨습니다.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중간에 주를 떠나는 일이 없도록 지금 분명히 하라고 하십니다. 주님, 오늘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분명히 계산을 내리도록 하시옵소서. 주의 종으로 사는 이 길 잘못 알고 가지 못하게 하옵소서. 말씀으로 깨닫기를 원합니다. 깊이 있는 묵상 가운데에 밝히 주의 길을 보여주시기를 간구합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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