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나눠요 | 이선희 목자
- 7시간 전
- 2분 분량
(이사야 23:1~18)
(요약)
무역중심지로 무역활동을 통해서 부를 축척했던 두로와 시돈이 멸망하게 되고 두로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애굽도 두로의 멸망에 고통받습니다. 이 모든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주권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두로를 회복시키시지만 그들은 또 예전처럼 음란함으로 부를 축척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부는 자기에게로 돌아가는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로 돌아갑니다.
(묵상)-죄
17. 칠십년이 찬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것이며 18.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이길로 가면 멸망의 길임을 말씀하시고 보여주셨습니다. 13절에도 힘으로 강력했던 바벨론의 끝도 멸망임을 보여주시면서 남유다에게 돌이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멸망이 끝이 아니라 회복도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두로의 회복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그들은 예전에 자신들이 부를 축척했던 방식으로 음란을 행합니다.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메세지도 알지못하지만 회복후에도 그 회복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돌아오는것이 아니라 여전히 죄가운데 머물러 하나님없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제삶 가운데에도 수많은 멸망과 회복이 있었습니다. 그 멸망은 저를 살리시기 위한 길임도 분명히 알게 하셨고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도 알았지만 회복뒤에 제삶을 모습을 돌아보면 회복한 두로의 백성들처럼 오직예수가 아닌 내가 다른것을 또 추구하며 살았구나를 묵상해보게 됩니다. 오직예수가 아닌 바벨론의 힘과 두로의 부를 쫒아가면 죽는것을 알면서도 내안에는 세상기준으로 좋은것 나에게 좋은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었구나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의 고백이 아닌 불평과 불만이 내안에 있었음을 보게하시고 그것이 교만이고 죄임을 보게하셨습니다.
(적용)
저에게 있어서 하나님보다 더 추구하고 쫒고 있는게 무엇일까를 묵상해보면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 자녀, 부부, 내가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문제가 없어야하고 인정받아야 하고 제기준에서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 없어야하고 만약 이 관계가 제기준에서 틀어지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남을 정죄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두로를 멸망시킨 이유 교만이라는것을 또한번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하나님이 저를 회복시킨 이유는 단하나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교만이라는 죄에 넘어지지 않도록 오직예수만 바라보라고 한것입니다. 두로를 회복시켜주셨지만 두로의 백성처럼 비참하게 회복되고 싶지않습니다. 이묵상이 저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앞에선 이해되지않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앞에선 억울한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앞에선 제가 드러날이유가 없습니다. 모든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초첨을 두기때문에 제가 연약해지고 죄가운데 넘어진 이유였습니다. 이제는 내가 쫒고 있었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닌 오직예수만 바라보고 날마다 나는죽고 예수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나를 회복시키신 이유이실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2절 말씀 바울의 고백을 마음에 새기며 오늘 주신 묵상말씀도 새기면서 오늘 주신 말씀의 위로로 또한번 하나님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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