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나눠요 | 국상후 전도사
- 1시간 전
- 2분 분량
(이사야 37:1-20)
[요약]
앗수르의 산헤립 왕과 랍사게는 하나님과 히스기야를 조롱합니다. 열방 모든 나라들의 우상들과 같이 여호와 또한 그의 나라를 앗수르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곧바로 여호와의 전으로 향하고 이사야에게 기도를 요청하며,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산헤립 왕이 또다른 편지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앗수르에게서 지키실 것이라는 말을 믿지 말라고하며 하나님에겐 유다를 앗수르에게서 구할 힘이 없다고 합니다. 히스기야는 이 편지를 직접 성전에 가져가 하나님 앞에 펴두고, 주께서 개입하셔서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만국에 알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묵상]
[20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사 천하 만국이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 -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의 위협 앞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모든 위협과 조롱 속에서 그의 자연적인 반응은 여호와의 전으로 올라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히스기야는 이 싸움을 히스기야와 산헤립의 싸움으로 보고있지 않았습니다. 유다와 앗수르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대적의 싸움이었습니다. “유다를 앗수르의 손에서 건져달라”는 기도가 아닌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고 주만이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옵소서”라는 기도에서 우리는 히스기야가 이 싸움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싸움으로 보고있음을 이해합니다.
[교훈]
히스기야는 이 전쟁을 통해 이 싸움이 하나님의 싸움임을 배웠습니다. 처음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에 앗수르에게 온갖 조공을 가져다 바쳤던 히스기야의 모습(왕하 18:13-16)이 하나님께서 이 전쟁을 허락하신 이유입니다. 이 전쟁이 내 싸움이 아닌 하나님의 싸움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기도만 합니다. 하나님 스스로 그의 영광을 드러내시기만을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죽게 두신 이유도 같았습니다. 일찍 가서 병을 고치실 수 있었지만, 나사로를 죽게 두십니다. 누이들과 다른 사람들의 믿음은 나사로가 죽냐 사냐에서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본질이 아님을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짊어지고 싸우는 세상의 싸움만을 싸운다면 나사로의 생사에 응답이 달려있지만, 하나님이 싸우시는 영적인 전쟁을 안다면 나사로는 죽어도 다시 사는 것입니다.
[적용]
4년 전 앤아버에 석사 학위를 위해 온 저는 도망치듯이 왔습니다. 학부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하지 못해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석사였습니다. 1년 안에 인턴쉽을 하고, 2년 만에 직장을 구해야 한다는 부담은 늘 제 마음 한 켠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공부하러 온 제게 복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는 잘못된 싸움과 부담에 억눌린 채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요 11:40),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은 번지르르한 직장도, 세상의 성공이 아닌 복음으로 눈을 떠 억압과 매인 곳에서 자유해지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