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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함께 나눠요 | 국상후 전도사

  • 15시간 전
  • 3분 분량

(고린도전서 7:25-40)


[말씀요약] 고린도 교회 내에 있는 결혼에 대한 많은 혼동으로 인해 바울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자유가 좋은 것인지 금욕이 좋은 것인지, 결혼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독신으로 남는 것이 좋은 것인지 등 바울이 답을 합니다. 미혼자들에 대하여 바울은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그냥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지나갈 때가 가까워 온 이때에 미혼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떻게해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고민하지만 기혼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떻게해야 내 배우자를 기쁘게 할까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법이 아니며 결혼하는 자도 잘하는 것이며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마지막 때에 가질 마음가짐은 다른 것으로 인해 마음이 갈라지지 않고 오직 어떻게해야 주님을 섬길지 헌신된 것이 복된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묵상 (명령, 35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는 영과 육을 분리하여 영이 중요하기 때문에 육으로 짓는 죄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극단적인 자유와 육에 관련된 모든 것은 악하기 때문에 아내까지 멀리하는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공존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믿음이 팽배한 가운데 아내를 멀리해야 하는 것이, 결혼, 재혼, 약혼자와 결혼 등을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헷갈렸던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에게 이것을 질문합니다. 결혼을 해야합니까? 하지 말아야 합니까? 바울의 답은 둘 다 잘하는 것이지만, 주의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독신으로 있는 것이 더 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바울의 답은 사실 결혼을 하냐 마냐에 있어보이지 않습니다. 결혼을 하든 (정욕에 불타지 않기 위해, 7:9), 결혼을 하지 않든 (배우자가 아닌 주를 기쁘시게 하는데 전념하기 위해, 7:34), 무엇을 하든 그 이유는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기 위해서 선택을 하도록 합니다.


결혼에 초점을 두고싶지 않습니다.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안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정답을 찾고싶지 않습니다. 본질은 결혼을 하는지 안 하는지에 대한 행위에 있지 않고 무얼 위해 선택하는지 그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사울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준비하며 이레 뒤에 오기로 한 사무엘을 기다립니다. 모래와 같이 많은 블레셋 군대를 앞에 두고 아무리 기다려도 사무엘이 오지 않자 군대의 사기는 떨어져가고 군인들은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이에 사울은 더이상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스스로 번제를 드려 싸움을 시작하려 합니다. “마침” 그때 사무엘이 오자 그가 하는 이야기는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입니다(삼상 13:5-12). 하나님은 사울에게서 전쟁을 이기는지 아닌지를 보고자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과를 바라시지 않았습니다. 전쟁을 이기고, 좋은 가축들을 데려와 하나님께 바치고, 대단한 예배를 드리는 결과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는 그의 마음을 보고자 하셨습니다.


[적용] 우리 교회에서 섬김을 하며 배운 것이 한가지가 있습니다. 가끔가다 목사님께서 당장 상황에 안 되는 일을 한번 두번 더 물어보실 때가 있습니다. 그럼 저는 “목사님, 그 쪽에서 답이 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지금은 사람이 부족해서 안되고 다들 돌아오면 시작할까요”, 등 계산된 답을 드립니다. 예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는데 왜 나한테 더 물으시지? 생각을 했습니다. 일로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결과 중심으로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복음을 알면 알수록 서서히 왜 그렇게 하시는지 알게되었습니다. 일을 하냐 마냐, 지금 상황이 가능하냐 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슨 마음으로 하나님을, 교회를, 맡은 영혼을, 부르심을 대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울처럼 “부득이하게”라고 하며 되고 말고를 따지고, 고린도의 어느 성도들과 같이 결혼을 하는게 거룩한 일이다 안 하는게 거룩한 일이다 따지는 일은 본질이 아닙니다. 내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있는지, 주님이 맡기신 일이기에 마음이 늘 그 곳으로 가 있는지가 본질입니다. 하나님께선 제가 잘 섬기는지 못 섬기는지를 보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서 중심이 하나님께로 잡혀있는지를 보고자 하심을 깨닫습니다.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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